장소는 바뀌어 모든 것이 부서져 버린 것 같은 공간이다.
작은 빛조차 없는 곳에 작은 불빛하나가 점점 가까워진다.
조명에 의해 살짝 보이는 그에 모습은 닳아서 반질반질해진 갈색 가죽으로 된 조끼와, 검은 마스크까지만 보인다.
지하 깊숙한 곳까지 온 것인지 끝자락이 보인다. 그곳에서 낡은 상자하나와 불에 살짝 탄 일기같이 생긴 노트를 본다.
얼마나 먼지가 깊게 쌓였는지 가죽장갑을 낀 손으로 먼지를 긁어내려 해도 온전히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낡은 상자를 그가 가지고 온 낡은 가방에 넣고 일기를 펴본다.
다 쓰지 않은 읽기장의 마지막에는 이렇게 써져 있다.
‘2055년 2월 9일
인간은 참으로 나약한 존재이다.
지금 배불러지는 않지만 밥을 먹고 있고, 안락하지는 않지만 쉴 수 있고, 비단옷은 아니지만 옷을 입고 있으며,
거짓된 것일지도, 꾸며진 것일지도 모르지만 웃을 수 있고 그것을 안전하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행복하다 생각한다.
비극은 행복할 때와 불행할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것이며, 웃음과 행복은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이제 3벙커로 갈 것이다. 이것만 있으면 모든 것은 완벽할 수 있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일기를 보던 그는 앞에 쓴 읽기를 보려는 듯 앞으로 페이지를 넘긴다.
‘2052년 10월 4일
2050년을 기점으로 거의 모든 과학은 발전했고 인류는 죽지 않게 되었다.
100억의 인구가 되었고,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 느껴질 때 ASET이 들이닥쳤다.
모든 국가의 말을 유창하게 하고 인류의 모든 행동과 말을 이해하는 외계 생명체 ASET은 테라포밍 과정에서
지구의 모든 육지를 하나로 합치려했고, 그 과정에서 인구의 5%만이 살아남았다.
5억의 인구만이 살아있었던 것이다.
살아남은 인류는 ASET과의 전쟁에서 그마저 있던 인구의 대부분은 죽고 5천만 명 정도만이 현재 남아있는 것이다.
인류는 테라포밍 바로 직전 테라포밍을 담당하고 있던 우주선을 부술 수 있었고, 미완성된 지구의 육지는 비스킷을 나눈 것처럼
4개의 육지로 합쳐지지 못한 채 있다.
모든 건물은 부서지고, 인류의 모든 문명은 사라졌다. 인류가 쏘았던 핵과 모든 무기들은 어디로 없어진 걸까?’
일기를 몇 장이나 주르륵 넘긴다.
‘2053년 12월 25일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다. 멋진 트리와 낭만적인 시간은커녕 전쟁을 치렀던 이들과 함께 있다.
이곳은 1/4 육지 한곳이다. 여기에서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 있는 인류는 살아남은 전 인류의 소수만이 있고, 지금 이 땅에 있는 벙커의 수는 500개이다.
전 세계는 힘을 합쳐 1년 만에 이 같은 벙커를 만들었다.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1벙커에 있다’
‘2054년 11월 16일
나의 연구는 거의 완성이 되었다. 아직까지 인류는 살아있다. ASET은 지하세계를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이 결론이다.
지금 이 벙커의 지도자를 죽였다. 지금은 내가 지도자다.
내가 있는 1벙커에는 2000명이 있다. 하나의 벙커에 2000명을 수용하기에 현재 땅에는 100만 명만이 있는 것이다.
벙커의 번호는 사각 땅에 좌에서 우로 붙여진 번호이다. 전체 땅에 퍼져있었고, 위치는 대장인 나만 알고 있다.’
읽기를 다 읽었는지 그는 일기장을 덮고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그는 유유히 그곳을 빠져나간다.
그가 빠져나온 그곳은 부서진 벙커처럼 보인다. 문을 감추었던 것이 부서져 있고 문마저 엄청난 힘에 의해 파괴된 것처럼 보인다.
희미하게 2라는 숫자가 보인다. 그가 나온 곳은 제 2벙커인 것이다.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빛은 뿌옇게 쌓인 안개와 먼지 사이로 그를 비추고 있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한혜지의 얼굴과 오열하고 있는 고은하가 보인다.
그리고는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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